2011년은 이상한 해였다. 나는 형편없는 비영리 직원이었고 몇 차례 직장을 거의 잃을 뻔 했다. 나는 올해의 첫 절반을 롤리의 작은 집에서 살며 과하게 술을 마셨고, 후반부는 샬롯츠빌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살며 역시 과하게 술을 마셨다. 나는 핵급 불안감을 유발하는 엉망인 관계에 깊이 빠져 있었고, 그것은 나의 감정적, 정신적 공간의 모든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누구이고자 하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는 거의 백만 개의 담배를 피웠다. 나는 miserable(비참했다).
그해 10월, 나는 프랑스에 일주일 정도 머무르며 당시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갔다. 나는 알다시피, 20대 내내 거의 모든 가능한 클리셰를 과감하게 경험했다. 요점은, 나는 프랑스에 있었고 그녀는 시험 때문에 이틀 동안 나를 만날 수 없어서 파리에서 혼자였다. 나는 대부분의 당신의 대학 친구들처럼 불어를 잘 알지 못했는데, 그들은 아멜리에 빠져들었을 때보다도 더 적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와인 주세요"라는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쉽게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아마도 당신도 짐작할 것이다. 몇 시간 후 나는 와인에 푹 빠져들었고 내 마음은 그런 상황에서 종종 간소화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불균형하게 흐르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고, 나는 그녀와 헤어질 용기가 없었으며, 필연적인 끝을 넘어서 좋은 것을 볼 수 없었다. 꽤 일반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클리셰처럼 보이지만, 인생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어쩌면 우리가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이 끝났고, 새롭고 혼자서 다시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의 전망에서 좋은 것을 보기가 힘들다. 그것은 무섭고 아프며 외로움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가까운 느낌이다 등등.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번 주에 프란시스의 새 앨범 마라톤를 듣고 이상한 이유로 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로, 나는 몇 년 전 파리에서의 2일간의 존재론적 경유지 동안 이 앨범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전형적인 공감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나는 저스틴 버논 같은 슬픔의 합창단이 내 생각보다 상황이 나쁘며 점점 더 나빠질 것이라고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조시 리터가 나를 찾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고난을 받아들이고 계속 나아가라는 격려가 필요했다. 나는 관점이 필요했다. 나를 조심스럽게 일으키고 먼지를 털어내는 것을 넘어, 얼마나 힘든 일이든 지나가야 하며 그 다음엔 다시 일어나 먼지를 털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그런 친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그 후에는 더 나아지겠지만, 그걸 당장 보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친구 말이다. 그리고 그 앨범이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내가 파리의 그 테이블에 있었을 때 필요한 도움의 손길이었지만, 지금은 필요 없다. 내가 그때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상기시켜주는 것과 그때 인생이 얼마나 작게 느껴졌는지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몰랐는지를. 그리고 나는 이 앨범은 우리 모두가 음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앨범은 너무나 많은 반면, 우리가 잘할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앨범은 매우 적다.
Tyler는 Vinyl Me, Please의 공동 창립자입니다. 그는 덴버에 살며 당신보다 The National의 음악을 훨씬 더 많이 듣습니다.